사순 5주간 목요일. 창세기 17,3-9; 요한 8,51-59
예전에 제가 신학생 때 일입니다. 저희 학년을 담당하시던 영성담당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더 이상 신학생처럼 사시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제의 마인드로 신부님의 모습처럼 사십시오. 그렇게 살아가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참된 사제가 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요. 저는 당시 독서직이나, 시종직을 포함해 아무런 직도 받지 못한, 3학년에 불과한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 신부님처럼 살라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신학생으로 살다보면,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공부 못한다고, 생활 못한다고 언제 짤릴까 하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밖의 생활과는 다른 삶의 연속이기에, 정해진 규칙에 어긋나면 주눅이 들고, 그러다보면 내가 이 생활과 맞는 건가? 하는 걱정에, 누구도 그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신학교를 자퇴하는 불상사를 맞이하게도 됩니다. 이런 불안감에서 살고 있는데 '더 이상 신학생처럼 살지 말라' 니,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아직은 학생신분이지만 이미 나는 불림을 받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토 1서 1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잘 안보이고 희미하게만 여겨지지만, 그 희미함 속에서 당신이 마련해두신 미래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아직 아들 이사악도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마치 다 이루어진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게다가 복음에서도 쉰 살도 안 되신 분께서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면서 마치 다 알고 계시는 듯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시간과 공간에 지배를 받고 삽니다. 늙으면서 병들고 곧 죽게 됩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모든 끝장을 다 봐야 할 것처럼 삽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하지만 우린 당신의 말씀 속에서 희망을 봅니다. 그 분의 약속이 참된 구원으로 이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현실에서 살지만, 더 이상 현실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참된 자유인이 되십시오. 그럴 때 그분의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린 그걸 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