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2012. 4. 3. 오전 10: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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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화요일.

여러분께서 들어보신 고사성어중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말이 있습니다. 뜻은 이렇습니다.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말인데요. 며칠 전 예비자 교리 때 주님의 그 유명한 행복선언에 대한 교리를 하였는데요. 그러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느 수준의 어느 범위입니까?’ 역시 대다수가 지금 잘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생각하시고 말씀하신 행복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지요. 범우주적 차원까지 가는, 몇 세대를 넘어서는, 그런 것이었는데 우린 지금 내가 잘 사는 것에만 만족합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게 한계를 그어놓고 기도를 하지는 않으십니까? 내가 바라는 수준에다 금을 그어놓고 말이지요. 이런 기도일수록, 이런 바램일수록 더 큰 것을 해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을 축소시키고 이른바 ‘쪼잔한 하느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요.

오늘 복음에 유다는 빵을 받고 나가버립니다. 그동안 마음에 품던 것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에게서 희망이 없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세상 속에서였습니다. 세상만이 나를 일으켜준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세상은 수시로 변합니다. 이렇듯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치 않을 것을 찾는다는 생각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유다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여깁니다. 며칠 있으면 선거가 있고 연말에도 대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서 또 무언가 기대를 걸 것입니다. 좀 나아지기를 말이지요. 물론 나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변하는 것에서 달라지길 바라는 것보다, 변치 않는 당신의 시각에서 답을 찾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내가 바라는 것에서만 맴돌 때 그분이 바라는 세상을 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서 또 헤매고 있습니까? 당신의 시각과 꼭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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