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사도 4,1-12; 요한 21,1-14
우리가 쉽사리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남에게 실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대를 걸었던 사람일수록, 내가 뭔가 바람이 컸을수록, 그 실망감은 큰데요. 그로인해 관계도 소원해지고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서로에게 느낀 감정은 바로 실망감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실망했을 것이고, 예수님도 제자란 사람들이 몽땅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갔으니 실망할 법 합니다. 서로가 그럴만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잖습니까? 서로가 다 아파합니다. 나도 힘들고 그 사람도 힘듭니다. 그래서 서로 예전처럼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복음은 언제나 그랬듯이 예수님이 먼저 다가가 주십니다. 그러면서 고기도 잡아주시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면서 식사도 챙겨주십니다. 이런 장면을 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니까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나는 왜 예수님처럼 될 생각은 안 했던 것일까요?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가 이런 것을 알려주시려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실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먼저 내밀 때 우린 주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일입니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일수록 싸우면서 자랍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무슨 이유로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날 그 친구가 먼저 와서 사과를 한 것입니다. 그 친구가 특별히 더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용기를 보였습니다. 우리도 그저 실망했다는 이유로 서먹하기보다 오히려 더 감싸주고 안아줄 때 참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으면 합니다. 사랑은 위기가 없으면 참된 싹을 틔우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