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7주간 수요일. 사도20,28-38; 요한 17,11ㄷ-19
신학교에서는 고해성사를 한 달에 한 번 보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래의 신부님을 만드는 교육장소이기에 학교에서 만든 성사표를 가지고 성사를 보았다는 표를 제출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가를 보는데요. 1학년 쯤이었습니다. 제 친구가 성사를 보더니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읖조리는 것이었습니다. “꼭 성사를 보면 죄를 짓고 싶단 말야~” 성사를 통해 깨끗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다시 흙탕물로 뛰어들겠다는 말과 같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이 친구가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사를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죄를 다시 지어야 맘이 편한 것은 왜 그러지?” 하고 말하던데요. 그 때는 그냥 웃어넘기며 지나갔지만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10년도 훨씬 넘은 그 때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 삶이 성경이나 성인전에 나오는 삶처럼, 너무 거룩하거나 성스러우면 세상 사람들과 친하지 못할까봐, 그들이 나를 대우하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그들이 하고 있는 잘못된 행위를 알면서도 따라하는 것말입니다. 하느님의 눈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눈이 더 두려워 그들의 의견에, 그들의 행동에 동조하고 인정해주는 것 말입니다. 뭔가 때가 묻어야만, 그들이 “너도 나와 같구나~” 하면서 같이 놀아줄 것 같기 때문입니까?
오늘 독서에서는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여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복음에도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분명 세상과 유리되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을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무일도 끝기도 성경소구에는 베드로 1서 5장의 말씀이 이렇게 실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죄 지을 기회를 피할 줄 아는 것도, 지혜로운 사람이 해야 할 행동입니다. 다 맛보겠다는, 모든 이들의 요구에 잘 응해줘야 잘 산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오만입니다. 담백하게 살 때 참된 것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