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금요일. 사도 18,9-18;요한 16,20-23ㄱ
예전에 알던 활동적이었던 일반인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를 계속 지켜보니 그동안 가졌던 취미가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축구, 테니스를 열심히 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골프에 낚시로 갈아타더니 언젠가는 악기를 한답시고 하다가 이게 쉽게 진도가 안 나가니까 그림을 그리겠답니다. 처음에 느끼길 ‘에너지가 있는 친구구나. 조금씩 다 하고 있으니까..’ 했습니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니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란 취미를 계속 바꾸어가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딛히면 이를 피하면서 다른 취미로 갈아타고 있던데요. 혹시 여러분도 그러십니까? 정말 봐야할 것이 힘들어서 말이지요.
오늘 아카이아 지방총독인 갈리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주겠소.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자기 분야가 아니라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괜히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싫었던 것입니다. 진정 자기관할의 백성 일이라면 나섰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라 분명히 말하는데요. 이런 비슷한 장면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그랬습니다. 그는 주님을 풀어줄 수 있을만한 힘과 분별할 수 있는 총명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진리에 대해 눈을 감아버립니다. 비겁하게도 말이지요. 이렇듯 우리도 진리를 봐야 하지만 당장에 다가올 고통과 신경쓰임이 두려워서 도망가기에 바쁜데요. 두려움은 이처럼 지금 가져야 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버리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유를 찾지요.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요.’ 두려워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 ‘이 현실의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 는 뜻이 됩니다. 말로는 “나는 다 버렸다. 빈 몸이요. 무소유다” 외쳐보지만 아카이아 총독이나 빌라도처럼 진리를 보아도 지금 쥐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쌓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듯이 우리도 신앙 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르코 복음 11장에 보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주님께 저주를 받아 말라 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혹시 우리도 남들에게 그럴 듯 하게만 보이길 바라다가, 진정 맺어야 할 것을 외면하며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그 열매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