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주간 월요일. 베드로2서 1,2-7; 마르 12,1-12
모두가 그렇습니다만 자기 자신이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잘 산다는 말은 다시 말해 본다면, 뭔가에 대해 깊이 빠져 있지 않은 이른바 중독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중독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우린 이미 세상 것들에 노출되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를 쉽게 말한다면 자기 포도밭도 아닌 소작농들이 마치 자기 것인 양 굴고 있습니다. 자기 것도 아닌데 집착하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혹시 나도 중독된 삶은 아닌 지 봐야 하는데요. 여기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럼 나는 평소에 돈과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하고요. 돈과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 관심사가 드러나니까 말입니다. 중독된 사람들의 모습은 ‘영적인 것에 충실하기보다 몸이 말하는 언어에 충실한 사람’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몸이 말하는 언어란 쉽게 말해, 자기가 채우고자 하는 것을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 찾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전에 예수회 수사님이면서 종교풍의 샹송 가수인 에메 뒤발이라는 수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가 책을 썼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달과 놀던 아이’ 라고 은근하게 돌려 번역이 되었습니다만 원제목은 이겁니다. [왜 밤이 그토록 길었는가?] 라고요. 그 자신이 중독자임을 고백하면서 이런 말을 마지막에 써놓았습니다. “더해가는 나이에 오늘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는 알콜중독자입니다. 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들 자신에 대해 제대로 말하는 시대를 꿈꿔본다.” 자신에 대해 증언을 하고 인정을 하는 것. 이건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모두들 덮으려고만 합니다.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다보면 어찌되는 지 아십니까? 계속 자신의 한쪽을 썩게 만드는 꼴이 됩니다.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어찌 됩니까? 이건 정신적이 문제이기에 다른 상처같이 도려낼 수도 없는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이라고요. 그동안 난 무엇에 집착하고, 이를 인정하고 있는가? 를 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부활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