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이사야 61,9-11;루카 2,41-51
제가 복사가 되고 나서 행했던 집에서 저지른 만행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당시 국민학교 3학년, 지금의 초딩 3학년이었던 저는 첫영성체를 받고나서 원장수녀님의 소개로 이른바 낙하산 인사로 복사가 되었습니다. 복사로 생활하다보면 꼭 집에 와서 하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신부님처럼 미사를 해보는 ‘미사놀이’ 였습니다. 당연히 집에는 미사경본이 없기에 책상 위에는 그저 성경책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대충 말씀의 전례를 비슷하게 하고난 저는 난관에 봉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성찬의 전례를 해야 하는데 집에는 성체 비슷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체처럼 생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했습니다. 첫째, 동그랗고 하얀 색을 띠어야 한다. 둘째, 대제병 정도의 일정크기를 만족시켜야 한다. 셋째, 빳빳해야 한다. 넷째, 여러 번 할 것이므로 물에 젖으면 안된다. 였습니다. 당연히 뻥튀기는 너무 크고 울퉁불퉁 하기에 퇴출이었습니다. 이 4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것을 집에서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엄마 화장대에 눈이 갔습니다. 여러분께서 기억하시겠지만 예전 80년대 화장품에는 겉뚜껑과 내용물 사이에 동그랗고 하얀 얇은 막으로 된 속커버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걸 가위로 잘라 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화장품 속을 쏙 빼서 무얼하고 있으니 혼날 만 했지만 어머니가 알고 계셨음에도 그냥 넘어간 것은 아마도 사랑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고마운 점은 미사놀이를 한 저를 보면서 우리 아이가 신부님이 될 떡잎을 보았다고 섣불리 판단하고 저를 조르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신학교에 갔으니까요.
오늘은 성모님이 3일 만에 아이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성모님은 아이가 없어졌음에도 그냥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여깁니다. 게다가 겨우 찾아 놓으니,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란 반발에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고 합니다. 성모님이 좀 둔하게 느끼셨을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만큼 아들에 대해 믿는 구석이 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분의 자녀교육방법을 보면 급하지 않았습니다. 지켜볼 줄 알았습니다. ‘미리’부터 하기보다 ‘제 때’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때에 행하려면 그 전부터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앞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 예수를 믿었던 성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주님을 어느만큼 믿고있나 살펴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