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일

2012. 7. 1. 오전 5: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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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3주일미사. 지혜서 1,13-2,24;고린토2서 8,7-15;마르코 5,21-43

여러분은 하루 중에서 어떤 내용의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습니까? 누굴 놀리는 말? 시기나 질투하는 말? 뒤에서 욕하는 말? 부러워하는 말? 아니면 누굴 사랑하는 말? 어떤 것 같습니까? 논어 안연편 10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살게끔 하기 위한 말이 나온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사람을 사랑해야 나올 수 있겠지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에게 생명을 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다.” 사실 우리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 이 신앙을 선택했습니다. 그 분도 나를 부르셨지만, 나도 그 분의 부름에 따랐던 이유는 단 하나!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여기서 말하는 삶이, 그저 지금 이 세상에 국한되어 있는 분들을 보곤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회당장의 딸을 고쳐주려는데 하혈하는 사람을 고쳐주는 동안 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 눈에서 죽어보이면 진짜 죽어버린 것입니까? 다 끝난 얘기일까요? 라자로를 살려줄 때 그의 누이 마르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합니다. 예수님은 차원을 넘어선 삶을 말씀하시고, 마르타는 ‘지금 당장’ 만을 얘기합니다.

어제 내린 비를 통해 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 생물들이 소생하고 있습니다. 비를 만나자 거짓말처럼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놀라움을 봅니다.

상처 입으며 자랐던 아이가 여러 치료를 통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노라면, 작은 말, 행동 하나가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음을 보게 합니다. 우리 각자는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누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이제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힘을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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