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3주간 성 토마스 사도 축일.에페소 2.19-22;요한 20,24-29
우린 토마스 사도의 이야기만 나오면 설래발을 치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믿음이 부족했던 사람’, ‘보고야 믿었던 사람’.. 그래서 그런지 다른 12제자들의 세례명은 많이 사용하지만 토마스만큼은 그다지 인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현실적인 사람이고 부족했던 사람이었을까요?
사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발표했던 막달레나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제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었겠습니까?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까지 뛰어가 확인하려 든 것만 보더라도 부활 이야기를 곧이 믿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직 눈이 뜨이지 않았고, 받아들일만한 때가 되지 않았으며, 주님의 예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때에 토마스가 말한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내 손가락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 는 말은, 오히려 우리를 대변해주는, 대신 우리 심정을 긁어주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냥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니까 믿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믿음의 확실성을 갖고 싶었던 그에게 주님은 다가오십니다. 이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란 고백을 하지만, 그의 이런 행동이 실은 믿음의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보지 않고서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참 모습을 토마스를 통하여 이끌어 주십니다. 비록 토마스는 꾸지람을 받았지만 이를 통해 참된 믿음의 자세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오늘 독서에 나온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 이란 표현처럼, 사도들의 도움으로 우리의 믿음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항상 잘 될 수만은 없습니다. 실패도 하고, 옆으로 돌기도 합니다. 나의 믿음도 비슷해 보입니다. 언제나 비단길이지 않습니다. 큰 체험을 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기도 해야 하고, 맺고 싶은 열매가 내가 생각한 시간이상으로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토마스의 도움으로 우리가 믿어야 하는 길이 어떤 모습인 지를 알게 됩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오류를 범해 온 모습을 사랑스럽게 봐야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나의 실수담을 이야기 할 때, 나는 그만큼 커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