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열왕하 24,8-17;마태 7,21-29
지금의 우리 교구가 새로운 교구장님이 취임하신 경사스런 때입니다만 한편으로 ‘신천지’ 같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곳이 있어 좀 어수선한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전 문득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믿어오던 기존 신앙이 그들의 갈증이나 배고픔을 잘 채워줬던가?’ 하는 의문과 반성 말입니다.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믿고 있던 이 신앙이 그동안의 검증을 통해 교리적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신앙이라 하더라도, 다가가는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혹시 배려의 차원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하는 염려 말입니다. 그들도 우리의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그는 2세기 경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로서 많은 이단들에 대항한 대표적인 교부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는데요.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며 한편 저는 독서와 복음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여호야킨이 자기 아버지를 따라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표현처럼 그들을 벌하시기 위해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통하여 새 삶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복음에도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는 권위있는 말씀을 통하여, 아프지만 악한 것을 가지고 선한 것을 이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며, 저는 우리 교회의 앞날을 바라봅니다. 그동안의 신학이 이단논쟁처럼 맞느냐? 그르냐? 판단은 잘해왔지만, 한편으로 기존의 신앙이 그동안 주님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을 어떻게 보다듬어 주고 있었던가? 하는 반성과 앞날도 기대해보는데요.
2천년간의 시행착오의 시간 속에서 무엇이 옳은 지, 그른 지는 이미 결판이 났습니다. 하지만 옳은 것을 진정 자기 것으로 만들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밑에 깔린 갈증까지도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요. 어쩌면 지금 남아있는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성경의 인물들과 교부들이 진리가 무언지 여러 통로를 통해 알아듣게 해줬다면 지금 현세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듣게 해줄 것인가? 그 역할이 선교의 또 다른 통로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