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토요일

2012. 6. 23. 오전 12: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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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1주간 토요일. 역대기 24,17-25;마태오 6,24-34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 결국 이런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먼저 구할 때 다른 것도 다 딸려오게 되므로 걱정하지 말고 하느님을 먼저 잘 따르자.” 고요.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곰곰이 읽으면서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우상을 세우고 섬기고 마는 저 심리는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을까?, 하지 말라는 것을 결단코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저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예언자들을 죽이고 마는데요. 모두가 짐작하셨듯이 그 안에는 ‘불안함’ 이라는 괴물이 숨어 있습니다. 불안하기에 나를 방해하는 모든 세력을 없애야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불안함에서 멈추지 않고 더 들어가 보면 숨어있는 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건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곧 만나게 될 하느님의 나라보다 더 우위에 두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만나야 할 하느님 나라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더 가치있게 여기는 나를, 하느님을 운운하면서 못하게 막으면, 내 안의 회로는 그들이 나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알고, 예언자쯤은 당연히 내 손에 죽어야만 된다는 그런 논리가 성립되는데요.

사람들이 왜 화를 내는 지 아십니까? 단순히 내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화를 낸다는 이유란, 다름이 아니라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슴도치가 털을 세운다던가, 맹수가 독을 뿜는 것처럼 나를 보호하고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물러나기를 바라는데요.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다 압니다! 걱정이 나를 살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걱정이라도 해야만 살 수 있다고 믿는 우리의 현주소가, 나를 옥죄게 만들고 있는데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느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 속에서 먼저 우리가 하느님의 방식대로 해 보는 검증 과정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하느님 방식은 안 될 것 같다고 여기기보다, 나보다 하느님의 방식을 행했던 모범적인 사람들의 체험담을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면서 살았는지 한 번 보신 후, 이 후 불평을 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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