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월요일.이사야 1,10-17;마태오 10,34-11,1
얼마 전 미국 뉴욕 북부에 위치한 뉴스케테 수도원의 수사님들에 관한 책을 하나 읽었습니다. ‘뉴스케테’ 라는 이름이 생소하긴 합니다만 이집트 스케테 사막에 존재했다는 크리스챤 최초의 수도 거주지 이름을 딴 수도원이라는데요. 거기 보면 그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기도한다는 정신 의학자 의사가 최근 자신이 발견한 사람들의 형태를 이렇게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내가 치료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외적으로 대단히 분주하게 만들려는 유혹에 붙잡혀 있어요.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데요. 문제는 자신의 영혼을 마주 대하는 것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 이해에 이르는 필요한 길은 바로 여기 우리 안에 있습니다. 잠시라도 멈추어 서서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왜 사람들은 평소 자기의 얼굴을 보기 위해 거울은 몇 번이나 들여다보지만 실제 마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에 대해서는 피하려고만 드는 것일까요? 오늘 독서에는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야말로 속없는, 겉치레격인 제사만 하고 있는 우리의 위선에 대해 비난을 쏘고 계신데요. 게다가 복음에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하면서 “너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하십니다. 여기 나오는 ‘너희’ 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보고 있는 사람’ 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심리학적으로 결핍을 갖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자기 이해에 대한 결정적인 결함에서 비롯되는데요.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원한다는 심리적 건강, 영적 건강, 그리고 육체적 건강이 실은 밀접하게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화를 내고나서 후회하거나 또는 그 행위가 옳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런 감정이 왜 일어났는지에 알아보고 노력한다면, 오히려 격렬함 때문에 벌어진 분별을 잃었던 경우는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이렇게 벌어진 경험이 점차 쌓여가면서 내가 이 사태를 의식하면서 바라보기 때문에 점차 현명하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고 자기에 대한 이해력도 커지며 자기 통제력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조건 잘못했다, 실수했다,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다.’ 하면서 잊으려 하기보다 벌어졌던 사태를 마치 학생들이 오답노트를 통해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다시는 틀리지 않듯이 나의 상태도 그렇게 보고 대처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