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수요일. 이사야 10,5-16;마태오 11,25-27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 추사 김정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삶은 굉장히 오만했었나 봅니다. 좀체 남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답니다. 그의 독선과 아집은 남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다는데요. 그가 단골로 꺼낸 얘기는 ‘내가 중국에 가서 실물을 봤는데~’ 였습니다. 당시 중국에 가 보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그 한마디에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지요. 조선에서 그를 넘볼 사람도 없었고, 쓰는 제품도 중국제 최고급 용품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만년에 유배를 다녀오면서 성품이 많이 꺾였답니다. 유배에서 풀려 나오다 강원도를 지날 무렵 어느 초가집에 내외가 마루에 나와 웃으며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을 봅니다. 내외의 그런 다정한 모습을 보다가 슬쩍 쉬어가겠다는 투로 말을 건넵니다. ‘여보 노인 올해 나이 몇이우?’ ‘일흔입니다.’ ‘서울은 가봤소?’ ‘웬걸요? 관청에도 못 들어가 봤습니다.’ ‘그래 이 산골에서 뭘 먹고 사우?’ ‘옥수수 먹고 삽니다.’ 문득 그의 마음이 아스라해졌답니다. 삶의 기쁨이 어디서 오는 지에 대해서요. 세상이 눈에 차지 않은 날도 있었고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도 자기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갖은 유배를 다녀온 후, 서울에도 못 가봤지만 옥수수 세 끼니로 지내는 그들의 얼굴에 시름이 없는 걸 보고 나도 몰래 망연자실해졌다고 그는 적고 있었는데요.
오늘 아시리아의 왕은 말합니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그의 마음에는 누가 들어있었을까요? 오직 자기 자신 하나만 들어차 있었겠지요. 누구도 자기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고 여겼으니까요. 그야말로 유아독존이지요. 그런데 오늘 당신은 이런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읽고 ‘그냥 평범하게 주저앉아 사는 게 최고’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를 보자는 것입니다. 당신이 마련해주신 지혜를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이고 서로 나누는 사랑 속에서 진짜 바라고 있던 행복을 잘 맞이하고 있는가? 를 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