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월요일. 예레미아 13,1-11;마태오 13,31-35
우리가 살고 있는 보통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건 바로 자연스럽게 실수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듯 겨자씨는 작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쉴 정도가 되고, 누룩을 밀가루 속에 넣으면 부풀어 오르는 자연스런 현상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인위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뭔가 만들어져 갖추어진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실수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특히 젊었을 때는 더 자신에게 냉혹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멋있어 합니다.
예를 들자면 요즘 펼쳐지고 있는 올림픽 선수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올림픽 정신이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인 것처럼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기술은 참 멋있습니다. 화려하고, 민첩합니다. 그러기에 실수를 용납하지 않도록 과학적인 데이터를 이용하여 연습에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속사정을 보면 몸 상태는 그야말로 종합병원입니다. 안 다쳐 본 사람이 없고, 가벼운 수술은 다 받아봤습니다. 몸이 망가져도 최고의 기술을 구하고 거기서 승자가 되려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들인 우리는 그들과는 정신세계가 다릅니다. 선수들처럼 무슨 경지에 오르려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매 순간을 즐기기 위함입니다. 바로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즐기고, 그 분을 느끼면서 자연스런 현상을 기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언가를 감추려 들고, 비밀을 자꾸 만들어 낼 때, 오히려 당신은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면서 그 비밀이 자기를 세울 수 있는 근간이라 믿어왔던 것을 처참하게 부수시면서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참된 것을 세우십니다.
세상은 성공하는 사람만 기억하려 듭니다. 승자만 기억하고 패자는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 속에는 실수투성이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오늘 1독서는 다른 신들을 섬겨 하느님을 배반한 유다 백성이 나오고 있고, 남의 부인을 탐했던 다윗 왕, 주님을 배반한 베드로, 신앙인들을 잡았던 바오로 등 실수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경전이라면서 교회에서는 우리더러 읽으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실수가 얼마나 고맙습니까? 완벽을 꿈꾸는 허상의 세계에 속지 말고, 참된 자연스런 삶을 찾도록 우리의 눈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