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일미사. 열왕기하 4,42-44; 에페소 4,1-6;요한 6,1-15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본격적인 휴가철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모두가 휴가를 갈 수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다음 주면 수능 100일전이랍니다. 누군가는 쉴 지 몰라도 수험생과 그 외 나름 여러가지를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힘겨운 여름인데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가끔은 시험을 치루는 듯 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앞으로 벌어질 사항을 이미 알고 계시면서 필립보를 시험하려고 물어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필립보 자신은 몰랐겠지만 어쩌면 우리도 순간순간 선택하는 시간 속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보게 해주는데요. 필립보는 이야기 합니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곳은 장정만도 5천명입니다. 당장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1독서도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보리빵 스무 개가 있습니다. 이 때 엘리사의 시종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충분히 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백 명에 비해 빵은 그야말로 작은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독서의 엘리사가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면서 시키니까 시종들이 그대로 따릅니다. 복음에도 “사람들을 자리잡게 하여라.” 하시니 제자들도 그대로 따릅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선생님이 다음에 뭘 어떻게 하실 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자들은 자기가 가진 생각과 판단을 선생님 앞에서 우선 어떻게든 내려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자기가 가진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면, 아마도 스승님을 이미 떠났을 것입니다. 이해 안 되는 일을 벌이려고 하시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따르고 있습니다. 과연 이 배경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이것은 유대인 특성상 어린 아이 때부터 교육이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당장은 선생님이 무슨 의도인지 몰라도 지금은 따르고 보는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요즘 면담을 요청하러 오시는 분들에게서 그런 것을 발견합니다. 본인의 문제를 털어놓으면서 본인이 결정한 사항이 꼭 맞기를 바라면서 이를 확인받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야기를 듣다보면 본인이 생각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헌데 본인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드는데요.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얼마 전 본당 교우 분 중 한 분이 ‘성서 백주간’ 을 끝내고 나눔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과연 성경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포기하진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하니 그런 걱정은 사라졌고 오히려 많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우리도 모든 것 안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명 주님의 뜻하심이 어디에 가 닿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선 기다림 속에서 바라보고 따를 때, 내가 여태껏 체험하지 못한 그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