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화요일

2012. 8. 7. 오전 9:24:06

글자

연중 18주간 화요일. 예레 30,1-22;마태 14,22-36

  사제로 살면서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적응하는 문제입니다. 저 같은 경우 2년마다 계속 새로운 곳에 가야 합니다. 물론 그 부임지라는 곳이 서울에 있는 성당이라지만, 참 재미있는 것이 같은 서울인데도 분위기는 참 다릅니다. 게다가 예전에는 청소년을 사목하다가 이제는 대다수 어른분들만 대해야 하니, 처음에는 어찌할까 고민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얼마간은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다가온 것이 공허함이었습니다. 뭔가 뻥 뚫린 마음, 고독, 그런 것이 오자,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누군가에게 자꾸 연락을 하고있고, 혼자 있기 불편한 행동을 보고 있자니 이건 한마디로 퇴보였습니다.

  얼마 전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한 때 수련자요 신학생이었던 봉헌된 젊은이가, 어떤 조직체의 보호없이 난생 처음 외로운 상황에서 살게 되면서 어떤  이성상대를 떠올리거나,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애정을 애타게 추구하는 것. 40세 이상의 수도자가 사랑에 빠져 어쩌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놓쳤다거나 어느 면에서 실패인 듯한 느낌을 대면하며, 공허함을 채우고 자신에 대한 확인을 추구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런 행동을 퇴보의 행동이라 보고 있었습니다. 뭐 이런 것을 가지고 크게 놀라진 마십시오. 사실 이런 과정 속에서 참다운 가르침을 받는데요. 이런 이유는 현실의 고달픔을 피하려는 환상으로서 예전에 누린 적이 있는 어떤 따뜻함으로 돌아가고픈 행동인데요.

  오늘 베드로는 물에 빠집니다. 그가 여러 기적을 봤음에도 그렇게 된 연유는, 거센 바람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그만 약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앞에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예전의 자기 안에 갇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퇴보의 모습은 기도를 한다는 우리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열심하신다는 재속회 회원들에게도 있는 모습들입니다. 열심하겠다고 어떤 사람이 재속회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거기서 가르쳐주는 새로운 기도방법을 따라합니다만, 당연히 안해 본 기도 방법이니, 잘 안되니까 예전에 편하게 해왔던 기도방법을 떠올리며, 그 때가 오히려 잘 되었다고 여기며, 새 방법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는데요. 앞으로 나가기 위해 지금의 자리를 잘 봐야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 나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지금은 거기서 치유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에게도 공개를 꺼리며 감췄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공개를 하고 남에게 얘기를 한다는 것은 그 문제를 이겼기 때문인데요. 여러분도 과정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잘 이겨나가시구요. 그리고 이를 개방하면서 잘 나누시길 빕니다. 그럴 때 거기서  자유롭게 되실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