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2012. 8. 10. 오후 3: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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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글라라 동정 기념일. 하바쿡 1,12-2,4;마태 17,14-20

조선시대 어떤 무사가 병서이론 시험인 병서 강독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시험관이 그에게 묻습니다. ‘만약 북을 쳤는데도 병사들이 진격하지 않고, 징을 쳤는데도 퇴각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겠는가?’ 그러자 시험 치려는 무사는 그 시험관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졌다고 코웃음 치며 비웃었다는데요. 그 후 그 이야기를 들은 어떤 이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종이 위에서 군대를 논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닐세. 분명 그 사람은 직접 군대 일을 겪어 본 사람인 듯 하네.’ 알아보니 그 시험관은 예전 군대를 끌고 나갔다가 공을 이루지 못하고 파직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쓰린 실패의 경험이 그런 실제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실제적인 사태가 발생합니다. 예전 제가 신학생 때, 본당에서 새벽미사를 참례하던 때였습니다. 갑자기 미사 도중 앞줄에 서 있던 할머니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쓰러지셨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쓰러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밖으로 옮기던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상황에서 할머니 바로 뒷줄에 서 있던 자매님 둘은, 마치 안수를 하는 자세로 팔을 벌리고만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본 상황입니다. 과연 그 분들은 무슨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무슨 믿음을 가졌길래 그런 행동을 취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마귀 들린 사람을 고치십니다. 믿음이 약했던 제자들을 호통치시며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내가 갖고 있는 이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앞서 이야기 한 예처럼, 실제로 전쟁에서 명령을 듣지 않는 병사가 발생하고 있고, 사람이 쓰러졌는데도 옮기지 않는 죽은 믿음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해야 살아있는 믿음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입니다. 그녀가 글라라회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녀가 세운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고 교황님과 고위 성직자들이 반대를 하고 나섭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관대히 용서해 주시지만 그리스도를 본받는 의무는 늦추지 마십시오.’ 라고 답합니다. 이런 엄격한 규칙은 그녀가 운명하기 이틀 전에야 승인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격함은 세계 각국에 퍼져 오늘까지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 자체가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믿음의 전파였기 때문입니다. 글라라에게 있어 기도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었고, 남들이 갇혀 있다고 보이는 봉쇄생활은 오히려 주님과 누리는 자유공간이었으며, 그녀가 행한 가난은 주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전제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즉 모든 그녀의 생각과 활동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없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자신의 삶은 기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미사가 끝나면 사회생활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믿음과 생활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결이 안 된 전기배선처럼, 내 삶의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막연히 가지고 있던 믿음이 불이 안 들어오니 재미도 없습니다. 그냥 다니는 신자 생활의 반복처럼 보입니다. 그럼 믿음에 불이 들어오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내 생활 속에서 주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 발견은 현실적인 상황대처에서 빛이 납니다.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재물이 있다면 재물로 도와주고, 건강하다면 봉사활동으로 도웁니다.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도우십시오. 그저 스쳐지나가는 판단의 잣대로 사람을 대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글라라 라는 이름 자체가 ‘빛’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름대로 그녀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기에 그녀는 빛처럼 밝은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십시오. 그럴 때 우린 진정 살아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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