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목요일

2012. 8. 15. 오후 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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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간 목요일. 에제 12,1-12;마태 18,21-19,1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다짜고짜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 그렇다고 그냥 넘기자니 주님의 제자로서 면목은 안 서고, 용서할 마음이 생긴 것도 아니지만, 하긴 해야겠고 해서 물어본 모양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즉 내 마음에 어떤 한계를 그어놓고 사랑을 하는 모습 말입니다. ‘이 정도까지라면 가능해~’ 라는. 내 자신이 허락한 범위의 사랑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의 모습은, 남을 배려하지 않은, 그저 내가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철조망에 불과합니다. 남들은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원할 지 모르지만, 내가 이미 그어놓은 사랑이기에 절대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여기가 내 한계거든. 그러니까 그 보다 더 한 것을 달라고 해도 내가 해 줄 수가 없어~.’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데요.

얼마 전 어떤 단체로부터 30분이 넘는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사실 주보에 나온 대로, 해야 할 강의가 이미 두 개나 예정되었기에 이를 준비하느라 바쁜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또 무언가를 해 달라는 것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참 힘든 부탁이었습니다. 그 때 현장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제대로 준비가 안 되면 나설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 자매님은 조금만 하면 된다고 조르면서, 이미 날짜를 잡아 벽보에 붙였던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후. 서로의 의견을 조절한 후, 새로운 날짜를 잡아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만, 이런 일을 치루면서 혹시 다가오는 교우들을 마치 금을 그어놓고 대한 것은 아닌가 보게 되었습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내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발자취를 이웃에서 보네..♫~’ 이웃의 모습이 하나의 예표요, 표징의 역할을 합니다. 베드로가 그런 질문을 한 것도, 저도 제가 계획한 한계 내에서 움직이려고 하겠다는 것도, 결국 자기 안에 그어놓은 한계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린 이성적으로도 움직여야 하겠지만, 모든 것을 뛰어넘는 부활의 모습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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