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에제 34,1-11;마태 20,1-16
(기념일과 다르게 독서, 복음으로 강론 하겠음)
부끄러운 제 얘기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저는 신학교를 늦게 갔습니다. 교사도 하고, 여러 청년활동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되면 생활을 잘 할꺼라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마친 친구들보다는 교우들의 아픔, 어려움 등을 더 많이 보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부님, 수녀님과 겪는 그동안의 여러 가지 문제꺼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 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아는 순간, 교우들이 생각한 교회생활과 성직자, 수도자가 바라보는 교회생활의 눈높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태여 일부러 다를 필요는 없지만, 대다수 교우들이 바라는 교회가 교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정의의 칼날은 갈아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목자들이 어쩌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이 양떼를 맡겼지만 오히려 “젖을 짜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 먹으면서 양 떼를 먹이지 않는다. 아픈 양을 고쳐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는 말은, 양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됩니다. 목자들은 자기 양을 다스려 보지만, 양이 실제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면서 실망을 합니다. 그런 세계 속에서 목자들은 양에게 더 큰 것을 안겨주기보다 그저 체제의 안정 속에서 정의만을 실현합니다. 그러나 복음에 나오는 밭 임자는 조금 다릅니다. 한 명이라도 더 건지면서 사랑을 베풉니다. 그 사랑 안에서 일꾼들은 일이 주어졌다는 것에 기뻐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밭 임자는 그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일을 했다는 것만을 중시합니다.
사제로 살면서 교우들과 같이 살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서로의 눈높이의 차이를 봅니다. 주일도 못 지키는 교우들에게 실망을 하면서 주님에 대해 사랑이 없음을 보며 화가 올라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가진 한계 속에서도 열심히 살려는 교우들의 몸부림도 목격합니다. 그 몸부림이 기적을 만나게도 해주기 때문입니다. 현재 모습이 어떻든 간에 우린 식구입니다. 가족이 가진 지금 모습에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서로를 안아줄 때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봐 줘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