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요한 1,45-51
우린 왜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왜 이 미사에 나와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 답을 쏟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바라는 소원이 이뤄지기 위해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신앙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별별 답을 다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하나씩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본분만 따진다면 여러분은 이 평일미사에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에게는 주일의 의무는 있을지언정, 평일미사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이 자리에 있다면, 분명 의무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구원을 얻기 위한다는 교과서적인 답도 그렇습니다. 과연 그 구원이라는 말도 실은 누군가 가르쳐줬기에 알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구원이라는 용어가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구원을 얻고 싶다는 말은, 분명 내 안에 갈증을 채워 줄 그 무언가가, ‘이 신앙 안에 있다.’ 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보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정말 그동안의 세월동안 그 소원이 하나도 안 이뤄졌습니까? 작은, 그 무언가가 이미 이뤄졌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평화, 행복을 원한다고요? 하지만 어쩌지요? 행복이란 놈은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과정 중에 만날 수 있는 놈입니다. 마치 길을 가다가 이쁜 조약돌을 줍는 것처럼 그렇게 만나는 것이 행복이지요.
무엇을 보려고, 얻으려고 시작했던 이 생활을 돌이켜보면 이미 나는 보았음을, 얻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보고 얻었기에, 그 맛을 잊지 못해 나는 오늘도 여기에 들어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맛을 얻기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그 맛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면, 난 더 이상 그 맛을 쫓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고기가 물을 쫓아다니지 않고, 그 안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듯이 말입니다.
오늘 바르톨로메오는 주님에게서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처럼 우린 이미 그 무언가를 보았고, 또 앞으로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즐거운 기다림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