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마리아 탄생 축일 마태오 1,1-23
여러분..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흑백인데다가 무성영화인데도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보며 아직도 찬사를 보냅니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가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 만들었던 그의 영화는 그냥 아무 소리 없는 활동사진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보았지만 이내 지루해하고 사람들이 떠납니다. 호기심만으로는 눈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여기에 채플린은 영화에 자막을 넣습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반응을 보냈지만 왠지 재미없어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영화에 배경음악을 넣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스토리에 맞춰 배경음악만 넣었는데 말이죠..
이제 다음 달부터 공중파 방송에도 케이블 방송처럼 방송이 끊이지 않는 24시간 방송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TV가 재미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소리 없는 TV가 성공했다는 얘기는 아직도 들은 바 없습니다. 이처럼 소리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없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아무 소리가 없는 것 보다, 차라리 소음이라도 있는 게 낫다고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렇게 소리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보이진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들려왔던 말씀이 서술됩니다. 미카 예언서는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라고 하고 복음에는 요셉이 꿈에 천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 기도이고, 그런 소리를 들어야만 참다운 당신의 자녀로 살 수 있는데요. 스승이 가르쳐주는 것에 관해 어떤 것도 귀담아 듣지 않거나 마음에 두지 않았던 건방진 수도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앙의 침체상태에 놓여 있던 건방진 수도승이 마침내 스승을 찾아서 말을 건넵니다.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스승님” “싫다” 스승이 한 번에 자르는 말에 수도승은 반발하며 대듭니다. “싫다니요. 왜지요?” 스승은 조용히 제자를 들여다 보면서 말합니다. “‘싫다’는 말 너무 좋지 않니?” 그러자 제자는 뉘우쳤다는데요. 우리가 말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싶다면서 실제로 그분이 무슨 말씀을 건네려고 하면,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그 말씀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면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분이 하느님 뿐 아니라, 내가 아는 선생님, 신부님, 어떤 영적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요. 배우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이 가진 목소리에, 내가 생각한 것을 하느님이 동의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스승을 모시려는 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깨지고 말지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지,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늘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하고요. 이 말이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무조건 복종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실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제자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신뢰의 틀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거짓제자에 대해 어떤 수사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가짜 제자는 아주 낡아서 거덜나버린 마른 스펀지 같아요, 온갖 더러운 먼지와 때에 절어서 이리저리 나뒹굴지요. 그걸 욕조에 던져보세요. 물 한 방울 흡수하지 않고 그저 둥둥 떠 있을 뿐이지요. 물을 전혀 빨아들이지 않고요.’
스승은 당신의 강직한 목소리를 통해 속임수를 헤치고 나아가 목표를 바르게 잡아줍니다. 제자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우리의 감정이 자신을 눈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이 낱낱이 까발려진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교정을 외면한다면 그동안 가져왔던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꼴이 되는데요. 스승의 강직성은 그것이 우리에게 무얼 보여주든지 간에 우리를 진실하게 붙잡아주려는 소리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들은 것은 많은 데 잘 안 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단계에 따라 한 단계씩 밟아가기 보다 좋다는 것, 이것저것을 다 하셨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첫 시간으로 들음의 중요성을 말씀드렸고요. 다음에는 자기를 잘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