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간 수요일. 고린1서 12,31-13,13;루카 7,31-35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x2). 성가 가사에도 나오는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사는 이유를 말해보라면 바로 ‘사랑하라’ 이 말로 압축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집을 부립니다. ‘내 뜻대로 어서 움직여 주기를..’ 하지만 원체부터 다른 사람들인데, 성향이 다른데 그리 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고집하고 있는 것들, 그저 붙잡고만 있던 것들을 가만히 놓고보면, 그저 나한테는 편한, 나에게 맞는 것들입니다. 그야말로 부분적인 것에 치중합니다. 하지만 참된 것이 와서 나를 비출 때, 온전함의 충만함을 통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언지 알려줄텐데요.
예전 본당에 있을 때 일입니다. 어느 본당이나 그렇지만 이젠 본당에 청년들의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거의 마흔이 되어도 청년입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이는 교구가 정한 청년나이인 35세 이하로만 본당 활동을 하게끔 하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끼인 세대인 나머지는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3040 모임을 따로 만드는 것도 당장에 좋아 보일 지 모르지만 교회를 분열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4050모임이 될 테니까요. 오히려 따뜻하게 맞아주면서 잘 설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을 향해 판단을 빨리내려 뭔가를 제시해 주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만, 아직 그들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무조건 이주대책을 강행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편의주의라고 밖에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놈은 생각보다 좀 느린 편입니다. 실천하기도 싶지 않고 결단을 내려 움직이는 것이 빠르지 않습니다. 뭔가 걸리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처럼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는 말씀처럼 지혜의 말씀이 따르기 어렵지만, 그것을 실천한 이들에 의해 드러났듯이 우리도 차근차근 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