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간 토요일

2012. 10. 5. 오후 11: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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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6주간 토요일. 욥기 42,1-17; 루카 10,17-24

그동안 7월 말부터 토요일마다 주제별로 강론을 했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잘 듣는 것에 대해서, 자기를 잘 보는 방식, 스승을 통한 훈련방법, 영적 성장을 위한 방법 등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잘 읽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에 대해 모를 분 안 계십니다. 성경필사도 하셨고, 백주간 등의 프로그램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해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주님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분들을 아직도 만납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오늘 욥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당신에 대해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욥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성무일도를 예로 들겠습니다. 성무일도는 많은 부분이 시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걸 잘 읽으려면 먼저 아무 분석없이 그저 읽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조용히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냥 나에게 일어나는 생각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데 계속 이렇게 해야할까? 싶을 겁니다. 계속 읽기만 하니까요. 그러다 이내 벽에 부딪힙니다. 아름답고 좋은 구절만 읽다가 이런 것을 읽습니다. ‘하느님의 찬송이 그들의 입에 쌍날칼이 있거라 그들의 손에. 이로써 악한 무리를 복수하리라’ 이처럼 표정이 구겨질 것 같은 구절은 왠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진짜로 시편의 가치가 발휘되는 지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어떻습니까? 자기를 위장합니다. 결점 없고, 깨끗한 이미지로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실제 모습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항거하고 저주하는 비탄의 감정을 들으면서 뭔가 우리 자신을 대변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시편을 읽으며 때때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면, 위선, 분노, 질투, 원망, 증오 등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정은 영적으로 성숙해 있다면 당신의 빛을 통해 치유되었어야 할 우리 자신의 일면들입니다. 그런 가운데 앞서 나온 시편은 우리의 현실을 대변해주면서 참된 기도로 들어가게 만들어줍니다. 피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일찍이 4세기의 성 아타나시오 성인께서는 ‘시편은 그것을 노래하는 사람에게 거울과 같이 된다.’ 고 하셨습니다. 시편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의 결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 시편과 나는 가까워지면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알려줍니다. 그러기에 시편이나 복음서를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도덕적 가치관과 대비되는 것 같은 것에 대해 도전을 허용하면서, 내가 그동안 만든 거짓 자아상을 갈아엎고, 새로운 영의 씨를 심어, 마음과 정신을 단련하고 시험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성경읽기인 ‘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독서입니다. 나의 어두운 면, 보고 싶지 않은 면을 직면하여 어떤 형태로든 이에 응답을 해야 합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여 듣고, 또한 깊은 눈으로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시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닙니다. 참으로 중요한 논점은 ‘하느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알지 못한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당장에 받아들이는 내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나를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 되어 마치 바리사이의 숨은 생각을 일깨우신 당신의 모습처럼 내 안의 것을 보게 해 주는 말씀이 된다면, 그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너희가 보는 눈은 행복하다.” 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됩니다. 독서에 욥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동안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라고요.

이제 그분의 말씀에 대해 내 맘이 불편하건, 편안하건 제대로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과의 참된 만남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2년 10월 9일 오후 4:18

    주님과의 참된 만남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슴다!! 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