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욥기 19,21-27; 루카 10,1-12
벌써 몇 년전의 이야기입니다. 저보다는 선배 신부님이시지만 아직은 젊은 이 분이 사제직을 내려놓고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습니다. 그에 대해 대다수가 기억하는 부분은 공부와 운동도 잘했고, 예술적인 데에도 소질이 있었으며, 명동성당에 부임했을만큼 똑똑하고 후배가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을 곧잘 해 주는 능력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만 사제직을 관두겠다고 주교님께 면담을 했더랍니다. 당시 저의 주임신부님은 30년간 신학교에서 영성담당을 하시고, 학장까지 지낸 분이었기에 그 분에 대해서도 당연히 기억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그런 일이 있더랍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신부님은 태연하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거 말야? 너무 잘 나서 그래’ 정말 그랬던 것일까요? 너무 능력이 많고 뛰어났기에 사제직이 대단치 않게 보였던 것일까요?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거지옷을 입은 괴상한 차림의 이 사내는 보잘 것 없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 뿐 아니라, 동식물까지도 말이지요. 평화의 기도, 태양의 노래를 보더라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며 봉사하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고 실천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린 어떻습니까? 많이 알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오늘도 공부하고, 많은 정보를 습득하려 합니다. 지식에 굶주린 짐승처럼 말이지요. 뭔가 있어야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은 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그럼 대체 무엇을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까? 복음 전파는 내가 지니고 있는, 그 무언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 그 분 자체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주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그 무언가를 가지고 해야 한다고 여기기에 자꾸 무언가를 모읍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주님을 우습게보고 믿지 못하게 만든다면, 오히려 그건 쓰레기가 아닐까요? 워낙 똑똑했기에 스스로 나와 버린 그 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무 것도 없이 당신을 증거하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자기를 드러내 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진정 나를 살려주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아무 것도 없이 베푸신 그 분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