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목요일

2012. 10. 24. 오후 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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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9주간 목요일. 에페 3,14-21;루카 12,49-53

  예전에 신학교에 들어와서 의아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1학년부터 3학년 까지 배우는 과목이 신학보다는 철학과목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제목을 들자면 이렇습니다. 철학개론,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철학사, 동양철학, 철학적 인간학, 논리학, 형이상학, 종교철학, 윤리철학, 인식론 등 분명 신학과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배우는 과목이 신학보다 철학이 더 많았던 겁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무작정 신학부터 배우면 광신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막 입학하여 정리되지 않았던 머리를, 철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마치 책꽂이의 책이 잘 꽂히도록 생각의 틀을 잘 형성시키고 그 다음 신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위함이라는데요.

  사람들은 보통 자기 방식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게 제일 편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린 주님의 방식대로 살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살자니 당연히 힘이 듭니다. 게다가 예전의 버릇을 버려야 새로운 주님의 방식을 잘 익힐 수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는 말씀처럼 새롭게 말이지요. 그동안 갖고 있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갈아타는 것이 물론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철학이라는 과목이 주님의 방식을 얻는 첩경은 아닙니다. 생각의 틀을 가졌다는 그리스인들이 최고로 여겼다는 철학을 버리고 후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철학은 신이 있는지? 영혼이 영원불멸한 지? 인생의 목적이 무언지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일단 생각할 수 있는 좋은 틀을 가졌기에, 주님의 방식을 헤아리면서 비로소 갇혀있지 않은 삶으로 발전해 갈 수 있었던 건데요. 마치 독서에 나오는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처럼, 자기를 뛰어넘는 힘을 받아들이면서, 훨씬 더 충만된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도 몇 번 한다고 소원 들어주고, 무슨 봉사한다고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내 범위를 넘어서는 그 분의 차원을 받아들일 때, 내가 짐작했었던 정도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우린 변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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