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토요일

2012. 11. 2. 오후 4:49:07

글자

연중 29주간 토요일. 에페소 4,7-16;루카 13,1-9

여러분은 얼마나 남들에게 기회를 주십니까? “일곱 번이라도 해야 합니까?” 라는 베드로의 말처럼 그동안 자기 성미를 참아 가면서 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눈에 차지 않는다면 어떻합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적인 방법은 어떻습니까? 잘잘못 가리기 바쁩니다. 남을 비판해야 자기가 똑똑한 사람으로 추앙받기에, 어떻게든 남의 속을 털어내어 ‘잘못’ 이라는 뼈를 발라냅니다. 나에게 자비를 구하기 전에, 먼저 잘못한 것을 자백하라고 강요합니다. 게다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다려주지도 않고, 각종 매체를 통해 신상털기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하여 한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듭니다.

우린 실수를 하면서 크는 사람들입니다. 어릴 때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였습니까? 나이가 든 성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실수를 하고 삽니다. 그런 우리를, 여러분들은 얼마나 기다려주십니까? 너무 기다려주었다고 생각합니까? 기회를 너무 많이 주었습니까? 아니면 그저 무자비할 정도로 가차 없는 날카로운 판단만이 살아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삼년 동안 무화과 나무를 심어 키웠지만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땅 주인은 말합니다. “보게. 내가 삼년 째와서 무화과 나무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맞는 말입니다. 땅 주인은 소득을 내야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재배인은 말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동안 재배인이 거름을 안 주었겠습니까? 주인의 성미를 고려할 때, 나름 애를 썼을 것입니다. 재배인은 그동안 가까이서 나무를 보아왔습니다. 그 나무를 땅 주인보다 더 잘 압니다. 나무를 탓하기보다 재배인 스스로 자책하며 자기가 더 노력해보겠다는 투로 이런 얘기를 해보며 땅 주인을 말립니다.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모두가 결과에 집착할 때, 따라올 수 있는 잘못을 잘 받아주는 행동 말입니다. 오늘도 내가 눈을 떴다는 건, 살아있다는 건, 그 만큼 기회를 허락해 주신 탓이겠지요? 기회를 통해 사랑의 삶으로 옮겨 가야 하겠습니다.

댓글 2

  • 2012년 11월 2일 오후 9:25

    감사합니다^~^

  • 2012년 11월 25일 오후 9:36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