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요한3서 1,5-8;루카 18,1-8
주님을 섬기는 어느 열심한 신자가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제가 세 가지 죄를 범했으니 용서해주십시오. 첫째로 저는 어디에나 계시는 당신의 현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많은 성지를 다니며 순례를 하러 갔었습니다. 둘째로 당신은 제가 살고 있는 면에 대해서 항상 마음을 써 주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매번 자주 당신께 도와 주십사고만 외쳤습니다. 세 번째로 제가 범한 죄를 다 용서해주시는 분이신데도, 그만 두려움에 떨면서 고해를 잘 드리지 못했습니다.."
매일 기도를 드리는 우리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과연 당신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를 너무 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가 사회에서 배운 패턴대로 주님께 다가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기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회방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세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본인이 사용한 방법은, 그저 사회인의 방식이었을 뿐입니다. 주님의 뜻하고는 상관없는...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본당에서 청년회 행사를 위해 몇 명이 답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길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물적인 손해를 상대방에게 끼치게 되었고, 만약 이 사고소식을 신부님이 듣게 된다면 걱정을 하실 것이고, 사고 난 차에 대해 물어보실 것은 뻔했습니다. 다행히 앞 범퍼가 조금 나간 정도였기에, 이 친구는 보고를 드리지 않고, 그 쪽과 대충 합의를 보고, 자기 돈으로 무마하고 끝내려고 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게 되었었는데요. 이런 것이 바로 사회방식이지요. 그저 공적인 기물을 파손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방식대로 결론내는 모습. 밖에서는 잘 했다고 여길 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니지요. 공적인 행사를 위해 다녀온 것이기에, 보고만 제대로 했다면, 교회에서 감싸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고를 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바로 우리 교우이니까요.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려 하십니다. 오늘 독서 말씀처럼 "우리가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이 자기 위치에서 자선을 베푼 것처럼 우리도 어려운 이들을 위해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도 그저 자기 방식으로만 고집하지는 마십시오. 얽힌 실타래는 다른 쪽에서도 풀어줘야 풀리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