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 레오 교황학자 기념일. 필리피 4,10-19;루카 16,9-15
세상엔 참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아닌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글자도 그런데요. 한자를 보면 ‘탐내다, 탐욕’에 쓰이는 탐낼 탐(貪)자와 ‘빈곤, 빈약’에 쓰이는 가난할 빈(貧)글자가 그렇습니다. 이 글자에 주요 부수는 조개패(貝)라는 글자입니다. 그래서 탐이라는 글자는 조개패 위에 ‘이제 금(今)’자를 써서 ‘화폐를 거머쥔다’는 뜻이고요. 빈이라는 글자는 조개패 위에 ‘나눌 분(分)’자를 써서 ‘화폐를 나눈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비슷한 글자지만 스스로 선택한 청빈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성 대 레오 교황학자 기념일입니다. 이 분이 당시 살던 시기는 440년경입니다. 이때 상황은 로마교회 목자로서 참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여러 많은 이단이 난립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신자들이 세례를 받은 후에도, 여전히 미신행위에 빠져드는 것을 경고하면서, 이를 다시 돌리려는 많은 작업을 하셨는데요.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믿고 있는 하느님 말고 다른 것을 기웃거린다는 말은 다시 말해, 지금 상태가 허(虛)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돈이건 미신이건 간에 고개를 자꾸 기웃거리며 다른 것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영적인 배고픔은 계속 더 할 뿐이지요. 그런데 바오로는 만족하는 법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가난하게도, 풍족하게도... 여기서 재미있는 사항이 하나 발견됩니다. 일부러 가난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대다수가 생각한 그런 정도까지의 궁핍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가난한 와중에서도 부자 못지않는 나눔이 실천되고, 거기서 기뻐하고 있는 현상이 그걸 말해줍니다. 나눔을 꿈꾸는 가난은 이미 더 이상 가난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재물 하나를 가지고도 누구는 사랑과 나눔을 보고, 누구는 자기 배채울 것만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선물이라 할 수 있는 재물. 이를 어떻게 취급하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