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4주간 월요일

2012. 11. 26. 오전 12:02:37

글자

연중 34주간 월요일. 묵시록 14,1-5;루카 21,1-4

 예전에 어떤 글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의 2천년의 세월동안 성인, 성녀는 이것 밖에 나오지 않았다.’ 라고요. 그래서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요즘은 검색 시스템이 좋으니까요. 굿뉴스에 들어가 성인 숫자를 알아보았습니다. 과연 성인들이 몇 명일 것 같습니까?  가나다 순서이건, 알파벳 순서이건 간에, 총 성인 숫자는 6157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2천년의 시간동안 세계적으로 수 많은 세례자가 있었을 터인데, 우리 성당도 매 번 3번이나 입교식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너무나 적은 숫자의 성인들을 보면서, 한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제껏 가르치기를 ‘자기 형편에서 할 수 있는  선에서, 대충 살라.’ 고 가르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바치라고 하였지요. 그러기에 저 자신을 쳐다보았습니다. 사실 교구 사제로 산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이른바 세속에서 살기에 유혹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이른바 ‘박쥐’ 처럼 살 수 있습니다. 새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쥐도 아닌 박쥐를 보면서, 잘못 살면 ‘껍데기만 신부’ 일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아마도 이런 고민은 그저 저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열심한 신앙인이라면, 생활 중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주님이나 성인들처럼 풀어내지 못하는 데서 느끼는, 자기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 눈물 짖기 때문입니다.

  오늘 과부의 봉헌 이야기가 나옵니다.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계산없이 다 넣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저와 여러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강론이 끝나면,  기계적으로 봉헌성가를 부를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만약 내가 부르는 노래가 그저 요식행위가 될 때, 전례가 기계적인 동작의 반복 행위가 될 때, 삶에서 주님의 향기를 느낄 수 없고 그저 인간적으로만 해 나갈 때, 우리의 모습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같은 그런 메마른 모습이 되겠지요.

  독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은 거짓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완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