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 주일미사. 바룩 5,1-9;필리피 1,4-11;루카 3,1-6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우리는 매일 기도합니다. 그동안 배웠던 방식대로, 또는 어떤 지향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것이 기복신앙이 되었건, 감사의 기도이건 간에, 우리는 매일 기도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해왔다면 기도하지 않았던 예전과 무엇이 달라져 있는 지 아십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가 살던 방식에서 조금 떼어서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즉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편하다고 해서, 지금하고 있는 이 방식에서만 머물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매일 들여다 보기에 고착되거나 맴돌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매일 새롭습니다. 나이가 들고, 주름이 들 망정 늙지가 않습니다. 매일 새로우니까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보아라. 네 자녀들이 거룩하신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신 것을 기뻐하면서, 해 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을 보아라.” 여기서 모여든다는 말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 시야에 갇혀 지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멀리 갔다가도 돌아올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자기 시야에 갇혀 지내는 사람은 터닝 포인트를 지나칩니다. 자신이 얼마나 갔는 지 모르기에, 어떻게 돌아와야 하는 지도 모릅니다. 2독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 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헤매지 않습니다. 비록 유혹이 다가와도 하느님의 지혜가 내 안에 흐르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자연히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가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요한은 자기의 사명을 알았습니다. 그 사명은 자리나 위신, 명예, 금전 등에서 헤어나 있기에, 그저 욕심에 취한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잠시 하는 척 하지 말고, 기도의 바다에 아예 잠겨야만 합니다. 잠기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정성은 당연하겠지요.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오늘은 인권주일이요, 사회교리 주간입니다. 기도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 나의 이웃이 어떤 어려움에 있는가가 보입니다. 그들의 아픔이 확연히 보입니다. 그동안 자기 것만 챙기다가 망쳤던 사람들을 보셨다면, 이제 기도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참답게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