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2012. 12. 28. 오후 2: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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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요한 1서 1,5-2,2;마태오 2,13-18

어릴 때 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꼽아보라면 바로 어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도 빨리 어른이 되야지.’ 하는 생각을 품습니다. 그러다 정작 어른이 되고나면, 누구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때부터 슬슬 두려워지는 사람이 생깁니다. 바로 후배들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해 줘야 하는 자리에 있다보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에 처하면 슬슬 그들을 피합니다. 밥이라도 사달라고 조를테니 말이죠. 이렇듯 어른이 되면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두려워하고, 나라의 임금은 민초들의 원성을 두려워하고, 선생은 학생들의 바람이 두렵기만 합니다. 또 그들이 말하는 바른 소리를 입 막을 수도 없으니 말이지요.

  오늘 헤로데는 나라의 미래를 역전시킬 한 아이를 두려워합니다. 자기에게 전혀 해코지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어린 아이인데도 그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이는 참사를 저지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는다고 여겼겠지요? 후한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겠지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죽이는 그의 만행은 사실 오늘날도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빈곤함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그 어른들이 생각하기에는 가난한 이들이 내는 목소리가 듣기 버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방법이 당장 떠오르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피해서는 안됩니다. 예전 우리는 올림픽을 치룬답시고 나라에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몰아내거나 외국인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이주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게 두려운 일입니까? 그들의 아픔이 창피합니까? 창피하다면 그들을 껴안지 못한 자기 자신이 더 창피한 일 아닐까요?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는 사람’ 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게 미약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독서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빛을 가릴 수 있다고 믿는 힘 있는 어른이 되려고 하기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어른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댓글 2

  • 2012년 12월 28일 오후 4:59

    아멘! 갈팡질팡 방황하고 있어요 결정하는덕 도움이 될듯합니다.

  • 2012년 12월 29일 오전 7:23

    진리안에서 용기와 지혜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