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화요일. 판관 13,2-25; 루카 1,5-25
매일 똑같이 진행되는 삶에서 갑자기 ‘변화’ 가 다가온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 변화를 기다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변화라는 것이 항상 예상되는 방향으로 다가와 주진 않습니다. 그러기에 참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는데요.
얼마 전 상영된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이제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간만에 배우로 나선 영화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라고요. 대충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늙은 클린트는 고등학교 야구경기장에 가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될만한 사람을 뽑는 스카우터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는 나이가 많은데다가, 시력도 노안이 되어 앞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서른이 넘은 변호사 딸이 있습니다. 야구에 대해 아버지만큼 잘 알지만, 변호사 일은 잘 풀리지 않고 아버지와의 사이도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예전 강속구를 날렸던 자니라는 선수도 이제는 팔이 망가져 클린트처럼 학교경기를 다니며 선수를 찾아보지만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영화제목은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라고 했지만 원제목은 ‘trouble with curve’ ‘변화구 공포증’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은 뭔가 ‘변화’ 의 시점이 와 있습니다. 아버지는 은퇴할 시점, 딸은 아버지와 화해하며 자신의 직장을 바꿔야 하는 시점, 자니는 클린트의 딸을 사랑하며 야구 캐스터가 되는 시점에서 말이지요.
오늘 두 집안이 그런 경우를 맞이합니다. 삼손의 부모와 세례자 요한의 부모, 모두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생겼습니다. 간만에 생겨난 아이이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만, 한편으로 노산이라는 두려움도 슬그머니 다가옵니다. 이처럼 갑자기 다가온 변화는 누구나 흥미롭지만 한편으로 두렵습니다. 어떻게 되어 갈지 모르니까요. 살면서 인생의 변화구는 언제나 다가옵니다. 이런 변화구를 여러분은 어떻게 맞이하십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에서 나왔듯이 두 부모들이 보여준 받아들임의 자세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뜻과 다르다고 튕겨내기에 바쁜 젊은 세대들은 이런 받아들임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가르쳐 주는 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되어가는 속에서 맞이하는 사람들은 다를 수 밖에 없는데요.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