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3주 목요일

2012. 12. 19. 오후 11: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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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주간 목요일

미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나의 운명을 다른데 맡겨 보려하거나 혹은 불안함에 떨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과거는 모두가 알고 있고, 또 우리보다 한 차원 높다는 신령적인 귀신들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점집의 처녀보살, 아기동자, 왕꽃 선녀들도 이 모든 것을 아는 듯이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모시는 귀신의 도움을 받아서 말입니다. 하지만 미래는 귀신의 영역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과 우리 사람들이 같이 엮어가는 곳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둘이 나옵니다. 1독서에서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하십니다. 여기서 표징은 꼭 기적이 아닙니다. 그저 오랜 후에 일어날 확신을 가지고 일어날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아하즈는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주님을 시험하지 말라’ 는 계명에 비추어 그야말로 주님께 온전한 믿음을 두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아하즈의 그 이면에는 신앙에 대한 모험을 가지려는 용기의 부족과 함께,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모자라는 사실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간청하고, 빌어라 하고 하셨지만 더 이상 못 나가는 그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오늘 성모님도 처음에는 이런 자세가 나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는 거절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선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리라는, 기다림을 믿었다는데 그 차이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을 넘어선 미래의 어떤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나 스스로가 미래까지 통제하겠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역사 안에 같이 동참하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행동이 초라해 보이고 무력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나중에는 가장 영웅적인 모습이었고 모두가 구원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린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하기에 더 참된 것을 갈구하고 거기서 희망을 얻습니다. 내가 쥐고 있는 것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어리석음에서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1

  • 2012년 12월 29일 오전 7:01

    굳은 믿음으로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기를 기도 합니다 ㅠㆍ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