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화요일. 마태오 1,18-24
‘어디까지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한 번 쯤은 꼭 다가오는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관계를 가지다보면 서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때, 전화를 받아도 말 없이 끊어버릴 때, 그래서 얼굴 보며 만나자고 일방적으로 문자 먼저 해 놓고 커피숍에 가 앉아 기다려도 역시나 나오지 않을 때,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마음을 굳혀버린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합니다. 여기서 우린 욕을 하거나 열 받는다고 그 사람을 원망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내 마음대로 안 풀리니까요. 그러나 그 사람이 죽여버린 ‘나’ 라는 사람을, 어떻게든 다시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도 중요하겠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린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랑을 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가 우리에게는 더 필요할텐데요.
우리가 아는 요셉성인은 화가 잔뜩 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원망도 가득했을 것이고요. 품성이 조용하기에 그나마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 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하였지만 이미 그는 결정을 굳혔습니다. ‘나의 인생의 리스트에 더 이상 마리아 라는 사람은 없다’ 고요. 그 때 천사가 다가옵니다. 물론 천사의 말이라 해서 한번에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배반감도 살아있을 것이고, 그래도 ‘나는 총각인데..’ 하는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구요.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결정을 무조건 최고라 여기지 않는 자세를 말입니다. 물론 자기다운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무조건 절대화 하지 않을 때,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제안에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팔랑귀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빠져 있다보면 자기가 제대로 가는 지 못 보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엔 자기 생각에 갇혀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과와, 화해의 손을 뻗어도 끄떡하지 않는 이웃들이 그걸 말해줍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