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성모신심미사

2013. 1. 4. 오후 11:55:45

글자

1월 성모 신심 미사. 갈라 4,4-7;루카 2,15-19

여러분께 질문 한 가지 드리며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하였습니다. 일 년 쯤 있다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예정대로 출산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 스스로가 생각할 때, 내가 참된 엄마가 되었다고 자각할 수 있는 절정의 때는 언제일까요? ① 임신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② 태교를 시작했을 때 ③ 아이가 열 살 쯤 되었을 때. ④ 아이를 결혼시켰을 때. 답은 뭘까요?’ 그렇습니다. 없습니다. 보기에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계신 어머님들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난 아직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는 사실을요. 현실은 참으로 냉혹하게도 엄마들이 채 연습할 시간도 없이, 차마 훈련도 다 치루지 못한 상태에서 엄마가 되어야만 합니다. 벌어질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 다른 집 엄마들이 사는 것을 보아 어느 정도 예감은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집 아이가 꼭 옆집 아이처럼 행동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연습도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디로 튈 지 모르고, 남편이 얼마만큼 육아에 도움을 줄 지에 대해 전혀 감(感)을 잡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란 상황이 변경되면 달라질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엄마 스스로도 이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딸과 함께 늙어갑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성모님은 어떤 엄마로 거듭났을까?’ 하고요. 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전해줍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성경학자들은 성모님이 그리 지성이 넘쳤던 분은 아니었다고 얘기합니다. 우선 출신성분도 그렇고요. 남편의 직업도 편안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뭔가 달랐습니다. 모든 일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으로 대응을 하거나, 자기 고집에 사로 잡혀있지 않고 무척 신중하셨다는 점입니다. 부르심을 처음 받았을 때나, 그리고 그것이 이어져 나갈 때, 그리고 아들이 사형에 처해질 때 조차, 상황이 어떻게 되어갈 지 진정 몰랐지만 그 안에서 놀라우리만치 참된 수용의 자세로 사시면서 현실을 대처해 나가셨습니다. 한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면서 성장한 케이스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제 ‘엄마의 격한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축 결혼’ 봉투에 이렇게 썼습니다. ‘제발 시집 좀 가라. 초여름이 가기 전에 축 결혼을 해라. 서른 다섯 생일을 축하하며 엄마의 소원을 썼다’ 보챈다고 되겠습니까? 엄마 숙제를 끝내려고 아이를 키웠던 것일까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내면에 있는 나의 영혼의 소리를 듣기 위해, 충분히 성모님의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댓글 1

  • 2013년 1월 7일 오후 1:02

    딸과 함께 늙고 있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