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금요일

2013. 1. 18. 오후 4:31:22

글자

연중 1주간 금요일. 히브 4,1-5,11;마르 2,1-12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장인 28장에 보면, 부활하신 후 열한 제자와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그 분의 제자들도 믿지 못하는데 율법학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믿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대단히 이성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에 근거하는 지는 모르지만, 작은 꼬투리를 하나 잡아서 마치 진리를 펼쳐 보이겠다는 야심도 엿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또 하나의 몸부림도 보입니다. 그건 바로 ‘나도 뭔가를 믿고 싶어~’ 하는 소망입니다. 가끔 가족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가슴 아프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빨리 믿게 만들어야지’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바라봐 줄 필요가 있습니다. 뭔가를 믿고 싶어하지만 쉽사리 우리들과 같아지지 못하는 그들의 불안함과 안절부절 못함을 봐라바 줄 때 답도 나올 수 있는데요.

  영성생활을 좀 먹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는, 하느님을 내 수준정도로 낮춰서 놓고 볼 때 시작됩니다. 당연히 그 안에는 성스러운 것도 없으니 온통 속된 것뿐입니다. 다 자기와 비슷한 저속한 수준으로만 보려하니,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고, 무슨 바람이 있겠습니까?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이 생명을 가지기 위해서는, 주신 말씀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란,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할 때,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것이 만들어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생명의 기운을 제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생각의 찌꺼기에 걸린 주님의 뜻하심과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3년 1월 22일 오전 6:3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