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토요일

2013. 1. 19. 오전 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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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주간 토요일. 히브리 4,12-16;마르 2,13-17

우리가 살면서 되게 조심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남에게 내 약점이나 단점을 안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누가 놀림감이 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수다 떠는 장소가 벌어지면 어떻게든 화장실에 안 가려고 합니다. 내 얘기할까봐서요. 그런데 재밌게도 예수님은 일부러 허술한 면을 보여주려는 듯이 행동하십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얘기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 분이 모르셨겠습니까? 그런데 궁금합니다. 왜 당신은 일부러 그런 말 들을 것을 뻔히 아시면서 그런 행동을 하셨을까요?

  예전에 신학생 때 신부님이 이런 안건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기숙생활을 오래 했으니까 서로 너희들끼리 허심탄회하게 다 얘기해봐라. 서로에게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다 털어 놓는거야.’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 시작했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던 약점이나 문제들을 얘기하는 순간, 얼굴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 나눔이 끝난 후 그 날 밤, 갑자기 이런 말이 제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그래! 네가 그동안 네 약점 가리느라 고생했는데, 그렇게 해보니까 좋니? 사람들이 그런 네 모습을 진짜 네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 야~ 다 보여. 너만 빼고 다 알아’

 다들 자신의 약한 면에 대해 보여줄 준비가 안 되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한 면을 가지고 당신은 복음 사업을 시작하시는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당신은 고맙게도 나의 어두운 면에서 시작하길 바라십니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면들은 대부분 가공된 면이 많습니다. 그 가공된 삶을 즐기다보면 나중에는 그게 자기의 진짜 모습인 줄 알지요. 당연히 회개나 참회는 안되고 남의 손가락, 이런 것들 참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동안 밀쳐냈던 ,묻어놨던, 하지만 계속 나를 따라 다녔던, 나의 약한 면을 이제는 끌어 안아야겠습니다. 그럴 때 제대로 된 시작이 가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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