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13. 1. 20. 오후 11:33:37

글자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히브 5,1-10; 마르 2,18-22

제 주위에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모두 신부님이 되었습니다만, 안타까운 사정으로 인해 1년을 쉬었기에 저하고는 동기이지만 서품년도는 후배가 된 친구들입니다. 여기서 한 친구는 기분좋게 잘 지내다가 가끔 저희에게 불만 어린 소리를 합니다. 즉 자기가 휴학했을 때 별로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물론 미안한 구석이 있습니다. 저 살기에도 바빴으니까요. 또 한 친구는 그런 처지를 자기가 겪었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 처한 친구가 생기면 찾아가서 위로를 해준다는데요. 저는 여기서 이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상처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상처’만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상처’ 속에서 완전으로 나아가는데요.

  오늘 독서가 그걸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이 근원이 되셨으며...” 자신의 인생에서 돌이키고 싶지 않은 날이었지만 그 날을 통해 그 친구는 치유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고통을 잘 받아들이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는데요. 하지만 자신의 상처에 갇혀버린 사람은 그저 어떻게든 자기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찾거나, 도망가면서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데요.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모두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어린 나이에 현실과 부딪혀야 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 이 뭔지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주님을 따르려면 새 질서가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새 질서란 자신이 주님께 서약을 하면서 예전의 자기 모습에서 떠나는 자세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즉 그동안 받은 여러 상처에서 벗어나 부활로 넘어가는 행동이겠지요. 그 어느 것도 나를 죽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죽이는 것은 나 자신일 때가 더 많습니다. 내가 나를 구렁으로 넣을 때, 우울증도 만나고, 기운도 떨어집니다. 허나 현실의 완전한 순종을 받아들인 사람은 앞으로의 좌표가 보입니다. 또 그런 나를 보면서 모두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우린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댓글 1

  • 2013년 1월 22일 오전 6:49

    완전한 순종앞에 걸려 넘어지는 저에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