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수요일

2013. 1. 22. 오후 11: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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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주간 수요일. 히브 7,1-17;마르 3,1-6

예전에는 누구에겐가 이야기를 할 때 좀 돌려서 이야기 하거나 비유를 섞어서 한다거나 했습니다. 사안이 어려운 것일수록 직접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예절이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얘기해도 알아들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는, 이른바 돌직구를 날립니다. 그래야 알아듣게끔 이야기 한다고 여기고, 또 듣고 싶은 대답을 바로 들을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요. 예전 구약시대가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의 메시지를 누군가가 대신 돌려서 알려주는 시대였다면, 예수님의 시대는 그야말로 직접 메시지를 던지러 오신 것과 같은데요.

오늘 그 말씀을 그렇게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얼마나 답답하시면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그럼 우리는 어려운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남들을 도와주기 위해 기도를 잘 해 주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 그 사람에게 맞는 것을 해 주고 있나? 하는 문제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곳 수용인원이 2만 명이 넘었습니다. 원래는 나라가 그 사람들을 보살펴야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질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기에 가끔 성당으로 찾아옵니다. 물론 그 분들은 신자가 아닙니다. 누구는 밤 늦게 성당에 찾아와 재워달라고 하고, 누구는 먹을 것을 부탁합니다. 제가 주임신부님이 아니기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요. 대신 방 값을 드리거나 라면 몇 봉지 드리곤 합니다. 율법학자들이 자기가 가르치는 법에 갇힌 한계를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법의 무한함을 생활로 잘 나타내 주어야 합니다. 사목의 여러 방법을 이용하여 직접적으로 그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우리 교회에서 이뤄져야 하는데요.

생각보다 교회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영적, 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손길이 꺼지지 않도록 당신의 맘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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