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 주일. 요한 2,1-11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상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맞아야 일이 이뤄진다.’ 고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노력을 하고, 용을 써도 사람들의 생각이 맞고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것들이 다반사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 상황이 아니라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바위에 계란치기처럼 시도를 해야 할까요? 그냥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눈물을 삼키며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까요? 이렇게 때가 안 맞는 형국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때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주시는데요.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사제생활 한 지 8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하는 것은 별로 된 것이 없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들이 있잖습니까? 공부, 교우관계, 여러 노력들, 그런데 내세울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느님의 일은 대다수가 잘 되었습니다. 강론, 강의, 사목, 여러 행사들, 제가 행복해서 웃기보다, 교우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행복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뭔가를 움직여서 된 것보다, 제가 움직여졌을 때 원하는 것 이상의 것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예전 서품식 때 성인호칭기도가 나올 때였습니다. 그 때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나서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다가왔고 저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성인 이름 하나하나가 노래로 들려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사제다운 사제되게 해 주소서” 8년이 지나고 보니까 ‘그 기도가 이렇게 이뤄지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은 곁들여 받을 것이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원치 않으셨지만 기적을 베푸셨기에 잔치에 참여한 이들이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자기에게 메어있지 않을 때,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라도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하고 있을 때, 그로 인해 곁들여 받았던 것은 무엇이었나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결국 내가 받지 않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