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일. 예레1,4-19; 고린1서 12,31-13,13; 루카 4,21-30
찬미 예수님. 일 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께 조심스럽게 여쭤보겠습니다. 정말 여러분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말씀대로 살고 싶으십니까?” 좋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답하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잘 따라서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여쭤보겠습니다. 남을 속이는 일과 정직하게 대하는 일, 이 중에 어떤 것이 더 자연스럽고 쉽습니까? 술에 취하고 난 다음에 하는 일과 맑은 정신으로 하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자연스럽고 쉽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편이 자연스럽겠습니까? 아니면 그 말씀을 어기고 사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까?’ 물이 거꾸로 흐른다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쉬운 일을 쉽게 가는 편이 성인의 길이요, 쉬운 길을 어렵게 가는 길이 속인의 길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야기는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신 다음 벌어진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기보다 예전에 자기가 봤던 방식으로, 남의 소문을 듣고나서 판단하는 방식으로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 쉬운 방법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편이 더 쉽지 않겠습니까?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기보다 말이지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방식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못 알아듣는 그들의 위해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주십니다. 구약시대 때 엘리야 예언자와 사렙타의 과부의 이야기, 그리고 엘리사 예언자와 나병환자 나아만의 이야기입니다. 둘 다 예언자의 말을 듣고 우선 따르고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분명 과부는 그 말대로 했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아만도 자기네 지방 강물이 더 깨끗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들 두 명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다른 점이란, 바로 자기네 생각에 갇혀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갇혀있는 사람은 성장하질 못합니다. 몸은 컸지만 생각은 유아기에 멈춘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지고 있는 현세인데요.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하듯이 우리의 생각도 자연스럽게 자라야 하겠습니다. 자라면서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건 예전의 시각에 갇혀있지 않는 모습입니다. 온전한 것이 오면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 더 쉽게 말해 강을 건너고 나면 나룻배를 버려야 하듯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무슨 말인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쉬운 방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대다수가 이미 강을 건넜음에도 나룻배를 짊어지고 가려고 합니다. 마치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인 모양이지요?
당신의 방법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차원이 다릅니다. 이 차원이 다름을 사랑의 속성을 가지고 설명하십니다. 참고 기다립니다. 친절합니다. 시기하지 않습니다.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은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실천하기 참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갇혀있지 않을 때, 이게 무슨 말인 지 알아듣는데요.
이번 주말부터 명절이 시작됩니다. 남에게 이런 사랑을 하기에 앞서, 가장 가까운 가족, 친지에게부터 그 사랑을 실천해보십시오.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뭔지 헤아려보십시오. 그게 주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