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가다 동정 순교자 기념일. 히브 12,1-4; 마르 5,21-43
삶의 희망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까요? 교리상으로 주님을 믿고 죽더라도 죽은 것이 아닌, 영원한 삶으로 이어짐을 아는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회당장의 딸을 고치러 가는 도중에 하혈하는 여자를 고쳐주시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그 딸이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나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이미 죽었으니까요. 이런 사상은 사무엘 하권 12장에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정을 통하자 그 벌로 주님은 그 아이를 치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부정하게 아이가 생겼다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가 죽고 말자 다윗은 몸에 기름을 바른 다음 옷을 갈아입고 주님의 집에 들어가 경배한 후 음식을 먹습니다. 당연히 신하들이 궁금해 하면서 묻자, “아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 단식하고 운 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 아이가 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지금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단식하겠소?”
비록 신자라고 할 지라도 대다수가 현실적으로 움직입니다. 자기 눈에 끝나버리면 모든 것을 관둬 버리는 것을 현 시대 사람들은 처세술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가타 동정녀의 순교를 바라보며 그녀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거는 여인이지 않았습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은 죽음도 종착역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끝나버린 인간관계들, 틀어져 버린 꿈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넘어서는 그분의 사랑과 행동들을 보면서 우리도 쉽사리 관둬서는 안되겠습니다. 다른 방향에서도 오실 수 있는 그분의 발걸음을 막지 말고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부활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