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 주일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것을 세상에 내놓기’ 입니다. 그게 대답이건. 행동이건, 물건이건, 예술품이건 상관없습니다. 무언가를 내놓을 때에야, 그 때부터 상대방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싶지 않다고 혼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나를 누가 알아줄 것이며, 서로의 교감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요즘 화두로 떠오른 ‘소통’ 이란 것도 불가하지요. 이렇듯 세상은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길, 내놓기를 바라는 인상으로 가득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오늘의 말씀이 그 답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1독서에서는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고 나오고 2독서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라고 묻고 있으며 복음에도 예수님께 무언가 답을 바라시는 악마의 유혹의 제시가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하루 동안에도 수 많은 대화와 말을 하고 있는 처지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까? 그저 개인적인 경험이나 개인적인 취향, 또는 어느 책에서 읽었다는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꺼내놓기에 바쁘진 않으십니까? 대부분의 그런 말들을 하는 근저에 깔린 의도는 다음과 같지요. ‘나 좀 알아줘, 나 좀 칭찬해줘, 내 말이 들어 먹혀야 할 텐데, 인기 얻고 싶어, 나 똑똑한 것 같지 않니?’
그럼 오늘 말씀에서 대답하는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독서에서는 모세가 백성이 답하여야 할 대답을 가르쳐줍니다. “떠돌아 다니던 아람인이 이집트 이방인으로 살다가 하느님의 손길로 이끌어주셔서 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즉 자신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지금의 우릴 만들어 주셨다.”고요. 2독서에는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는 표현처럼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는 답을 얻습니다. 그럼 유혹을 받으신 예수님은 어떤 대답을 하고 계실까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저는 여기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니까 성경이야기를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위기나 유혹을 받으면 보통 자기가 그동안 해 온 방식으로 헤쳐 나가려 합니다. 즉 자기 성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혹받고 있는 인간 예수가 하느님의 말씀과 동일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말씀 안에 녹아드는 삶을 살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우리 본당을 포함하여 많은 본당에서 신부님의 인사이동이 거행되었습니다. 보통 신자들은 신부님이 바뀔 때마다 이런 불평을 합니다. ‘예전 신부님은 이랬는데 이번 신부님은 저렇다.’ 물론 사람이기에 개인차는 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바뀌는 신부님 속에서 이것을 보셔야 합니다. 그 신부님 안에 심겨져 있는 하느님의 말씀, 예수님, 교회의 상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요. 이것을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매 번 다른 신부님을 만나며 지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닥쳐오는 여러 사안에 대해 그저 내가 해왔던 예전 방식의 경험으로만 대처하고 있는 지 아니면, 진정 하느님의 말씀, 예수님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지에 따라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도 외부인들은 내가 하는 대답, 행동, 대처방식을 마치 먹잇감을 기다리는 늑대처럼 그렇게 기다립니다. 아마도 여차하면 물어뜯으려 하겠지요. 하지만 주님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그 말씀과 내가 하나로 녹아드는 삶을 보여준다면 악마가 물러가듯 그들이 물러가는 상황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에겐 좋은 무기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 말씀이 약하게 보입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자체도 유혹의 시작이란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