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 토요일. 예레 11,18-20;요한 7,40-53
세상에서 참으로 교활한 사람은 대놓고 욕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음모를 꾸미고, 분위기를 만들고, 소문을 흘리고, 은근하게 대중이 그 말에 젖어들게 만듭니다. 진리라고 생각하게끔 그럴듯한 근거자료를 만들거나 또는 권위있는 말을 크게 확대하여 전면에 배치합니다. 오늘 같으면 이런 것이지요.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쓴 ‘토론의 법칙’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토론하여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써놓은 내용입니다.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평범한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경우, 우린 보편적인 견해를 사용한다. 여기서 이 둘이 똑같이 선택하는 무기는, 대부분 권위이며 이것을 가지고 치고받으며 싸우게 된다. 머리가 좀 더 좋은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경우에도 가장 추천해 주고 싶은 것은 바로 권위라는 무기다. 왜냐하면 평범한 인간은 근거라는 무기 앞에서는 제대로 생각하지도, 스스로 판단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이 말 앞에서 어느 누가 반론을 자유롭게 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조사할 생각도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그저 ‘권위’를 앞에 내세우고 여기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고 있는데요.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다는 가르침이 이렇게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도 있지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지만 그 진리를 따르려면 실제로는 엄청난 고통이 동반됩니다. 이것을 인정할 줄 아는 자기 굽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논쟁을 벌이는 사람에게 있어 진리란 무의미합니다. 오로지 승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참된 것을 찾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내 앞에 권위나 다른 어떤 것이 가로막더라도, 참된 것을 찾고 따르는 무던하고 우직한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