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수요일
밀이 부서져야 빵이 되고, 커피가 빻아져 가루가 되어야 마실 수 있고, 쌀이 물에 삶아져 누군가에 입에 씹혀져야 영양가가 나오듯이 부서지고 녹아드는 속에서 본연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저 본래 자기 자신이기만을 고집하거나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기만을 원한다면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지요. 우린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기만을 원합니다. 그리고 원해왔습니다. 그런 평온함을 추구하는 자세로 몇 십년을 계속 살아왔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뭐가 남았습니까? 예전보다 영적인 진보가 있었습니까? 나를 희생하여 누군가를 살려준 적이 있었습니까? 뼈를 깎는 노고를 통해 동네 사람들을 위한 좋은 개발품을 안겨주었습니까? 편안하게 ‘나 지금 그대로’ 이기만을 원하며 살다가 무엇을 손에 쥐셨습니까?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그 일깨워주심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습니까?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했습니까? 나의 옳음을 항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게 당장에는 내가 살기위해, 나의 편안함을 위해서는 좋았지만 오히려 그 방법이 나를 더 성장시키지는 못했음을, 주님과는 멀어졌음을 시인하고 인정해야 했습니다. 내 뜻은 이뤘지만 남이 아파하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유다가 끝내 자기 뜻을 관철하였듯이, 우리 동네 사람들도 의지가 강합니다. 그 의지가 분명 좋은 쪽으로 작용한 것도 있었지만 한편 부작용도 컸음을 우린 압니다. 주님께서 받아들이는 수용의 자세 속에서 참된 승리의 부활을 보셨듯이 우리도 받아들이는 자세를 키워간다면 지금보다는 당신과 더 가까워져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