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2013. 4. 2. 오후 2: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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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사도 2,36-41; 요한 20,11-18

살면서 내가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내 감정에 너무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기쁨, 슬픔, 짜증 등, 지금 느끼는 것이 나를 움직이고 그것에 좌우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지금 그런 감정에 빠져있기에, 다른 것이 쑤욱~ 들어오더라도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느끼고 있는 내 감정에 충실하여 푹 젖어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지금 내가 어렵고 힘들어 하는 상태인데 누가 만약 그것에 반대되는 것을 얘기하더라도 귀에 안 들어오는 그런 형국이라 하겠습니다.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그런 상황입니다. 사랑하던 선생님을 잃은 그 슬픔이 너무 크기에 그녀는 울고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아 왜 우느냐?” 말을 건네도 못 알아봅니다. 돌아가신 지 며칠 되었다고 그 얼굴을 왜 모르겠습니까? 물론 부활하신 분이기에 예전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을 때, “주님이십니다” 하고 알아보는 장면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분명 아주 다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자기의 슬픔 감정에만 빠져있기에 못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독서에도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이제껏 일어났던 상황을 설명해주자, 그제서야 그들의 마음이 아파서 물어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고요. 자기들이 저질렀던 상황을 몰랐던 이유는 그저 자기 감정에만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이 아닌, 진리를 봐야만 하는 사람들인데요.

  그럼 진리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자신을 조금만 떼어 한 발자국 멀리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연습을 조금씩 해 나갈 때,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그럴 때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겠지요. 그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자유인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물론 중요합니다. 서로 그것을 헤아려줄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태도가 더 필요하겠습니다. 어쩌면 부활의 모습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리라 보여집니다. 원래 갖고 있던 모습에서 약간 떨어뜨려 보는 태도. 그럴 때 주님의 뜻도 보이고 내 앞길도 보일 것입니다.

댓글 1

  • 2013년 4월 2일 오후 4:52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