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목요일.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사도5,27-33;요한 3,31-36
부활과 더불어 받은 선물이 있다면 바로 협조자이신 성령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개신교에서 말하는 성령과, 우리가 아는 성령과의 차이점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알고 가르치는 성령은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이 융합되어 있고요. 교회 자체가 성사적인 은총의 보관자가 되고, 교계제도가 성사적인 은총의 분배자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즉 성령을 내가 잘 받아서 그 분이 잘 머무실 수 있도록 할 수 있고요. 그 은총의 선물을 또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 가르치는 성령은 좀 다릅니다. 이들이 말하는 성령은 인간이 보유할 수도 없고, 자신들이 받아서 처리할 수도 없는 성격이라고 봅니다. 즉 단지 순간순간 받을 수만 있지, 자신들이 이것을 받아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을 대하는 태도가 차이가 나는데요.
오늘 말씀은 성령을 받은 이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가르침을 펼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것을 받은 이들이 어떤 자세를 보여줍니까? 베드로와 사도들이 달라집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하면서 겁도 없이 최고의회에서 대사제들을 향해 증언을 합니다. 만약 성령을 받은 그 때라야 이런 용기가 나올 수 있다면, 성령을 받은 그 당시, 단 일회성으로만 가능한 사건이라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보는 계속 증거의 삶으로 옮겨갑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들 스스로는 성령을 잘 간직하는 보관자의 모습을 갖고 있다는 말일 것이고요. 게다가 이 간직된 삶으로 진리의 말씀을 남들에게 울려주고 있으니, 분배자로서 역할까지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은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이 주교님은 자국의 왕인 폴란드 국왕의 폭정을 꾸짖다가 괘씸죄로 살해당한 분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느님께 순종한 결과인데요. 물론 성령의 힘으로 살다가 인간적으로 이렇게 겁나는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고 그분의 손짓을 피하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의 손짓을 피하려 하다가, 아예 그분의 목소리를 거부한 사람들과 똑같은 인생결말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총의 보관자요, 분배자인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좋은 분별을 하여,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요청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