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일. 성소주일.
여러분이 이미 갖고 있는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엄청난 능력이죠.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도 다 갖고 있다고 여기기에 별로 신통찮게 생각합니다. 그 능력이란 바로 오감이지요.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거기다 뭔가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육감도 있고요. 거기다가 신앙인은 영적인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것이라도 그저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과, 좀 더 예민하고, 민첩하게 발휘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요. 즉 제가 말씀드리고픈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신 능력이 얼마나 제 역할을 하면서 발휘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에게 능력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벌써 여러 가지나 됩니다. 그러면 신앙인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듣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성당에 오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았다 하더라도 직접적이지는 않았지요. 간접적으로 ‘누구를 통하여, 누구 안에 있는, 하느님을 본 것’ 이니까요. 그러나 청각은 다릅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가 옆에서 귀에다 대고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울려주었기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울려준다’ 는 말을 더 해 보고 싶습니다.
수유동에는 ‘서울 가톨릭 농아 선교회’ 라고 청각 장애자들이 모여 미사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청각장애자들이 있기에 당연히 청각 장애를 가진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시지요. 그러면 여러분께 질문하나 드립니다. ‘보통 미사 때는 성체, 성혈 축성 시 깊이 경배하라고 종을 칩니다. 그러면 그곳에 있는 청각 장애자들은 미사 때 종 대신에 어떤 방식을 취할까요?’ 흥미롭게 그들도 듣는 용품으로 대체합니다. 종 대신 큰 북을 치니까요. 북소리는 그냥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북을 치면 소리뿐 아니라 쿵~하는 ‘울림’ 도 들어있습니다. 북을 치면 공기를 타고 파동을 일으켜 내게 도달되면서 가슴이 울리는 것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북소리는 단순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까지 바꿔주는 울림이 됩니다.
오늘은 부활 4주일이면서 성소 주일입니다. 복음에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넘어 어떤 울림으로까지 작용하고 있습니까? 얼마만큼 그 울림에 내가 움직여지고 있습니까? 혹시 여전히 요지부동이라면, 더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 안에 거름장치인 필터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의 부르심의 원천과 그 의미까지 헤아릴 줄 아는 우리가 될 때, 그 부르심이 생명으로 나를 살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