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젊었을 적보다 나이 들어서 잘 하는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산이나 들을 다니며 꽃구경을 즐기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전보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늘을 닮고 싶다’ 는 자그마한 욕구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하늘을 닮아갈 때, 내가 어떤 삶을 추구하는가를 나 스스로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무슨 욕구가 있었을까요? 네 편의 복음서에는 각각의 상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 상징은 성당 곳곳에 부조물로 붙어있기도 하는데요. 당시 문맹이었던 신자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 중 마르코 복음은 사자를 상징합니다. 첫 장부터 광야의 요한을 제시하는 모습에서, 마치 포효하는 사자를 나타내고요. 모든 사건들을 즉시, 단번에, 곧바로, 서술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살았던 과거의 이야기를, 현제시제를 이용하여 빠른 진행감과, 생생한 묘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로 마르코 복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가 왜 빠른 속도감을 가지고 생생하게 묘사를 하고 있을까요?
살다보면 느끼는 것이 가끔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무능입니다. 내가 그렇게 잘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무능함만을 계속 보다보면 그저 실망과 우울감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나의 무능을 인정해야만, 진정한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접어듭니다. 오늘 복음은 참으로 속도감 있는 장면을 한꺼번에 보여주십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낀 순간, 당신이 나타나 주셔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러면서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라는 약속을 하시지요. 그 말씀 후,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 쪽에 앉으십니다. 마르코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이미 보았는데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사실 그런 표징을 보았습니다. 당신을 믿으면서 내가 이만큼이나 변화되었고, 당신을 통해 변화된 수 많은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나의 무능함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당신으로 인해 변화된 표징을 통해, 더 큰 삶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마르코가 보여주고 싶었던 삶의 방식일 것입니다. ‘나’ 라는 사람에서 눈을 떼어 당신을 바라볼 때, 진정한 답이 보이는 방식 말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을 닮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