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학자 기념일

2013. 4. 28. 오후 11: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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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학자 기념일. 사도 14,5-18; 요한 14,21-26

자기를 드러내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자기 자랑부터 시작하여 인터넷상에서 블로그를 이용하여 자기를 드러내거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멋진 몸매를 위해 운동하거나, 좀 더 이뻐지기 위해 성형에 이르는 방법까지,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보여줘야만 인정받는 시대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보니 어떠십니까? 어떠셨습니까? 한 번 보여줘서 되질 않습니다. 더 크고 더 자극적인 것을 보여줘야 하고, 그들을 놀래킬만한, 마음에 들 만한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어느 것도 서슴치 않는데요. 왜 그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있을까요? 그건 어쩌면 속이 허해서이지 않겠습니까? 지금 갖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을 못해서, 남과 비교하느라 하느님께서 주신 진짜 갖고 있던 보화가 무언지 알지 못해서 벌어지는 현상이겠지요.

오늘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묻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제자들이 바랐던 사항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 같으신 분이 왜 음지에 묻히시려고 합니까? 이 큰 힘 한 번 보여주셔야지요.!’ 그래요.. 그래서 그러면 뭐가 남을까요? 인기? 명예? 권력?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물거품인 것을, 예전 지학순 주교님 시절, 원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폈던 장일순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날 아는 사람이 한 사람 생기면,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진다.’ 고요. 사람은 아는 이들의 마음과 눈에 드는 일을 하려고 애쓰기 마련이고요, 그러면 진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학자 기념일입니다. 신비로운 체험 후에 완덕의 길을 갑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예전에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좋았습니다. 박수도 받고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그러나 그 반응이 저를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만듭니다. 내가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날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남들 앞에 연주하는 것보다 저 혼자 연습하면서 하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해 왔던 나쁜 버릇도 잡아가고, 미처 보지 못한 것도 발견하기 때문이니까요. 기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대면하다보면,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사항을 알려주시고 보여주십니다. 남한테는 다 표현 못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중요한 문제들을요. 협조자이신 성령은 그렇게 내게 와 주십니다. 지금 속이 허하시다면, 더 깊이들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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